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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 - 별을 연구한다는 것, 쓸모없음이라는 가장 큰 쓸모

책 리뷰

by 채널나인 2026. 2. 1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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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밤 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우주의 경이로움과 인간의 하찮음을 느끼곤 합니다.

반짝이는 별빛 아래 서 있노라면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작아 보입니다.

아니, 작다 못해 거의 먼지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우주먼지요.

그런데 그 우주먼지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천문학자들입니다.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는 지웅배 작가가 천문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과 과학, 그리고 우주에 대한 사색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배경 위에 인간이라는 작은 점을 올려두고, 그 점이 얼마나 웃기고도 사랑스러운지 이야기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의 첫 에피소드 제목은 도발적입니다.

‘쓸모없음에 대한 자백’.

과연 천문학은 쓸모가 없을까요?

저자는 천문학의 ‘경제적 가치’를 묻는 질문 앞에서 약간은 자조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물리학이나 화학은 당장 산업과 기술에 연결되지만, 천문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망원경으로 별을 본다고 해서 당장 매출이 오르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GPS, 위성통신, 우주 기술의 상당 부분이 천문학과 우주과학 연구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늘 당장 쓸모가 없다고 여겨졌던 연구가 수십 년, 수백 년 뒤 인류 문명을 바꿔 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더 인상 깊었던 대목은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반짝이는 별빛은 이미 오래전에 출발한 과거의 빛이다.”

우리는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별의 흔적을 보고 있습니다.

천문학자는 바로 그 ‘과거의 빛’을 추적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래전에 사라진 존재의 흔적을 잊지 않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니, 천문학은 쓸모없는 학문이 아니라 기억을 보존하는 학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천문학은 가장 거대한 규모의 추모이자, 가장 긴 시간의 기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은하수를 보면 감탄합니다.

“와, 저게 바로 우주의 강이구나!”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천문학자에게 은하수는 때때로 ‘시야 방해물’입니다.

은하수의 빛이 너무 강해서 그 너머의 우주를 관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아, 또 가려졌네…”라는 한숨의 대상이라니, 세상은 역시 입장 차이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저자의 유머가 빛을 발합니다.

원고 마감일을 어겨가면서까지 책을 쓰지 못해서 두서없이 썼다고 고백하지만, 읽는 내내 이야기는 유려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이것입니다.

매년 생일마다 자신의 나이만큼 ‘광년’ 떨어진 별을 찾아보자는 제안입니다.

나이가 곧 거리라니, 이 얼마나 시적인 발상입니까.

올해 제 나이가 48이니까, 48광년 떨어진 별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약 48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까마귀자리'의 알파(Alchiba)라는 별이 있습니다.

그 별빛은 48년 전에 출발해 지금 제 눈에 도달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태어났을 무렵 그 별에서 출발한 빛이, 제 생일 즈음에 도착했다고 상상해 보면 괜히 마음이 몽글해집니다.

“아, 나와 같은 시간을 건너온 빛이구나.”

이런 상상 하나로도 우주가 훨씬 가까워집니다.

천문학은 숫자와 공식의 학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상의 학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올랐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주가 이렇게 거대하다면, 인간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자는 인간의 하찮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우주의 나이, 크기, 스케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인간은 거의 점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점이 우주를 이해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이야말로 경이롭지 않습니까.

우주는 거대하지만, 그 거대함을 인식하는 존재는 인간입니다.

별빛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밤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고 싶어졌습니다.

한동안 별자리를 찾아본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목을 뒤로 젖혀 보고 싶습니다.

북두칠성도 찾고, 제 나이만큼 떨어진 별도 떠올려 보고, 그 너머의 우주를 상상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유튜브도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활자로 만난 천문학자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들으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별을 연구하는 사람은 쓸모없어 보일지 몰라도, 별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를 조금 더 넓은 세계로 이끕니다.

그리고 그 넓은 세계를 아는 순간,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덜 조급해집니다.

오늘 밤,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셔도 좋겠습니다.

어쩌면 48년 전, 혹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 출발한 빛이 지금 여러분을 향해 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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