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의 설렘도 없고, 우정의 따뜻함도 없고,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이 예뻐서 괜히 기분 좋아지는 일도 없겠지요.
세상은 아마도 아주 단정한 회색빛일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슬픔도 없고 분노도 없습니다.
시험 망쳐도 덤덤, 상사에게 혼나도 무덤덤.
감정 기복이 없으니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말도 있듯이 부러움이 있어야 더 잘하고 싶고, 분노가 있어야 바꾸고 싶고, 사랑이 있어야 지키고 싶어질텐데요.
감정이 사라지면, 동력도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닐까요?
이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소설이 바로 이서현 작가의 <노 이모션>입니다.
<노 이모션>의 배경은 감정제거술이 일상화된 근미래 사회입니다.
AI에게 위기감을 느낀 과학자들은 인간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을 ‘감정’으로 지목합니다.
감정 뉴런을 제거하는 수술이 성공하고, 세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감정을 가진 사람과 감정을 제거한 사람.
“감정을 제거하고도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작품 내내 묵직하게 울립니다.
그러나 사회는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라는 결론에 손을 들어 줍니다.
참으로 이성적인 결정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요.
이 세계에는 ‘노이모션랜드’라는 최고의 기업이 등장합니다.
이곳은 감정을 제거한 사람만 입사할 수 있습니다.
효율, 성과, 완벽한 판단.
그야말로 감정 없는 엘리트들의 왕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사를 꿈꾸지만, 막상 감정을 없애는 수술 앞에서는 망설입니다.
감정이 귀찮기는 해도, 막상 떼어내자니 왠지 심장이 허전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강하리가 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 무소유자로 판정받은 인물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노이모션랜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습니다.
게다가 인류 최초의 감성 제거자이자 회사 설립자인 ‘어스’가 상징적인 인물로 그녀를 주목합니다.
한마디로, 감정 없는 사회가 기다려온 완벽한 인재입니다.
그런데 완벽한 시스템에는 꼭 작은 오류가 생기지요.
강하리에게 발신인 불명의 고백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고백, 이어지는 사건들.
감정이 없다던 그의 마음속 한구석에서 이상한 질문들이 피어오릅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걸까?”
“이건 단순한 호기심일까, 아니면…?”
이 지점에서 독자는 흥미로운 경험을 합니다.
감정이 없다고 설정된 인물에게서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흔들림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제거했다고 믿는 사회 속에서,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기척이 서서히 스며듭니다.
감정은 수술로 깔끔하게 도려낼 수 있는 기관이 아니라, 인간 존재 깊숙한 곳에 얽혀 있는 뿌리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설정이 기발해서가 아닙니다.
감정을 제거하는 사회라는 극단적인 배경을 통해 작가는 오히려 감정의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감정은 때로 우리를 망칩니다.
충동구매를 하게 만들고, 괜히 상처받게 하고, 밤에 이불킥을 하게 하지요.
하지만 동시에 감정은 우리를 움직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고, 억울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집니다.
만약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실수는 덜 하겠지요. 하지만 모험도 덜 하지 않을까요?
상처는 덜 받겠지만, 깊이 사랑할 일도 없지 않을까요?
작가는 이 질문을 독자에게 조용히 건넵니다.
감정은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삶을 앞으로 밀어주는 에너지일지도 모른다고요.
무미건조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신은 오늘 무엇을 느끼셨나요?”라고 묻는 듯합니다.
<노 이모션>을 읽으며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조금씩 ‘감정 최소화’의 사회를 향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효율, 데이터,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불편한 요소로 취급하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계산기보다 복잡하고, 알고리즘보다 엉뚱합니다.
그 엉뚱함 속에서 예술이 태어나고, 혁신이 나오고, 사랑이 시작됩니다.
이서현 작가는 차가운 설정 위에 뜨거운 질문을 올려놓았습니다.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 속에서, 과연 인간의 감정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만약 사라진다면, 우리는 여전히 지금의 우리일까요?
무채색이 편안해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조금 번지더라도 색이 있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존재가 아닐까요.
무미건조한 시대에 마음껏 감정을 느끼고 또한 재미를 느끼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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