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얼마 전 브래드피트 주연의 영화 [F1]을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들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질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긴장되고 흥분이 고조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레이싱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스포츠가 아니라 속도와 계산, 팀웍, 그리고 사람의 심리까지 여러가지가 얽혀있는 스포츠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읽게 된 책이 바로 최이도 작가의 <체이스>였습니다.
영화에서 스크린이 보여준 속도를, 이 소설은 문장으로 구현해 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이야기가 빠름보다 멈춤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주인공 재희는 모두가 인정하던 신예 레이서였습니다.
재능도 있었고, 성적도 좋았고, 무엇보다 핸들을 잡은 손에 망설임이 없던 인물이었지요.
하지만 결승선을 코앞에 둔 사고로 트랙을 이탈하면서, 재희의 시간도 함께 멈춰버립니다.
그 사고 이후 3년간의 영국 재활 생활은 몸을 회복시키는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마음까지 고쳐 주지는 못했습니다.
엄마 소라의 고향인 가로도로 돌아온 재희는 레이싱을 떠나 있으면서도, 레이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우연처럼 시작된 고등학교 드론 봉사활동은 처음엔 말 그대로 시간 때우기용 일정에 불과했죠.
엔진 소리 대신 드론의 윙윙거림, 트랙 대신 체육관, 재희에게 이 모든 것은 임시 정차 같은 시간이었지요.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드론을 조종하며, 실패와 재도전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재희는 조금씩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사고의 기억, 레이싱에 대한 애증, 그리고 ‘레이서가 되라’며 밀어붙이던 엄마 소라와의 관계까지요.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재희가 누군가에게 가르치면서 스스로를 회복해 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속도를 내려놓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참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체이스>는 레이싱을 소재로 한 만큼 전개가 빠릅니다.
장면 전환도 민첩하고, 설명은 최소화되어 있으며, 독자를 트랙 위에 바로 올려놓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소설의 진짜 엔진은 속도가 아니라 회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재희는 사고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려 애쓰지 않습니다.
대신 사고 이후의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 갑니다.
이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과장되지 않아 더 좋았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서 급정거를 경험하잖아요?
그때 필요한 건, 다시 전속력으로 달리는 법이 아니라 브레이크를 밟아도 괜찮다는 확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결말을 정해 놓고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를 알고 읽으니, 책을 읽는 내내 재희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상상하면서 읽게 되더라구요.
재희는 과연 다시 레이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인가.
힌트처럼 흩뿌려진 장면들을 주워 담으며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드론 레이싱 장면은 백미입니다.
자동차 레이싱 못지않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묘하게도 더 조용하고, 더 내면적인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이 장면을 읽으며 “아, 이게 바로 재희의 현재 속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체이스>를 덮고 나니, 최이도 작가의 다른 작품도 자연스럽게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제목부터 강렬한 <메스를 든 사냥꾼>은 또 어떤 속도와 온도를 가진 이야기일지 기대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레이싱이라는 화려한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상처 입은 한 사람이 다시 자신을 믿게 되는 과정이 차분히 담겨 있습니다.
빠르게 읽히지만, 읽고 난 뒤에는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인생의 트랙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분들이라면, 재희의 질주를 조용히 응원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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