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요즘 저는 수영을 배우고 있습니다.
수영장 물속에 들어가면 처음엔 숨쉬기도 어렵고, 몸도 마음도 어색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팔다리가 물과 리듬을 맞추기 시작하면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지고, 동시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합니다.
땀은 나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죠.
‘아, 살아 있구나.’
모리 에토의 <런>을 읽으며 그 느낌이 떠올랐습니다.
이 소설은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살아 있음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다마키는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남은 삶을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버린 채 살아갑니다.
희망도 없고, 관계도 끊긴 채, 그저 숨만 쉬고 있던 삶.
그러다 우연히 받은 자전거를 타고 죽은 자들의 세계, ‘레인’에 닿고, 그곳에서 죽은 가족을 다시 만나죠.
하지만 그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이번엔 자전거도 없이 40km를 ‘뛰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황당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왜 하필 ‘달리기’일까?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됩니다.
달리기는 단순히 다리를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무기력에서 빠져나와 삶을 다시 붙잡는 과정이에요.
그 안에는 고통도 있지만, 동시에 에너지와 방향, 그리고 희망이 있습니다.
저는 이걸 수영과도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물속에 들어갈 때처럼, 삶에 다시 발을 담그는 건 두렵고 버거운 일이죠.
하지만 팔을 휘젓고 발을 차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리듬 속에서 점점 마음이 움직입니다.
물 위를 떠 있는 몸만큼, 가라앉았던 마음도 천천히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혼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마키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녀의 변화는 ‘이지러너즈’라는 러닝팀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팀인데, 그 안엔 웃긴 사람도, 괴짜도, 거리감 있는 사람도, 조금은 까칠한 사람도 있죠.
그런데 이상하게, 함께 뛰다 보면 벽이 허물어지고 서로에게 스며듭니다.
몸이 같이 움직이면, 마음도 같이 움직이게 되는 법이니까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에이코 씨와의 관계입니다.
에이코 씨는 처음엔 다마키에게 꽤 적대적으로 굴고, 흔히 말하는 ‘악역’ 포지션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그녀 역시 마음의 깊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다마키와 에이코는 여러 번 부딪히지만, 그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부딪히며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죠.
두 사람 모두 마음의 벽을 허물고, 상처를 나누고, 서로에게 성장의 디딤돌이 되어줍니다.
어쩌면 진짜 변화는 그 지점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만큼,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변화시킨다는 것.
그건 더 어렵고도 의미 있는 성장입니다.
마침내 다마키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내는 장면은 단순히 ‘달리기 성공’의 순간이 아니라, 삶과 연결된 모든 것, 자신, 가족,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한 상징적 순간으로 다가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멈춰 서는 시기가 있습니다.
숨을 쉬고 있어도 살아 있는 느낌이 나지 않는 그런 순간들요.
그럴 때 <런>은 조용히 말해줍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천천히, 네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움직이면 돼.”
저는 오늘도 수영을 배우러 갑니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면서도,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살아나는 걸 느낍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움직임’이 있기를 바랍니다.
달리든, 수영하든, 혹은 그냥 마음속에서 한 발 내딛는 것이라도요.
우리는 다시 움직일 수 있어요.
그리고, 함께라면 더 멀리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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