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역 출신입니다. 지금은 수도권에 살고 있지만요.
모든 문화와 경제가 서울에만 쏠려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고향을 생각하면 아쉬운점도 많습니다.
분명 각각의 지역마다 특색있는 문화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잘 살리지 못하는 기획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평소 로컬 축제나 지역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그것이죠.
그러던 차에 <로컬을 기획하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지역을 살리는 기적 같은 변화의 시작'이라는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로컬을 기획하라>는 제목만 들으면 뭔가 생생한 지역의 현장, 축제의 함성, 기획자들의 땀과 눈물이 가득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책을 펼치면 그 기대는 살짝 방향을 틉니다.
마치 대학교 교양 수업의 PPT를 책으로 엮은 듯한 느낌이에요.
깔끔하고 요약이 잘 되어 있어서, ‘로컬 기획이 뭘까?’ 궁금했던 분들에겐 아주 친절한 입문서입니다.
저자 노동형 작가는 로컬이라는 주제를 ‘개념-사례-정리’라는 구조로 간결하게 풀어냅니다.
복잡한 이론은 없고, 어렵거나 무거운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부담 없이 읽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깊이 있는 독서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책의 표지에는 다양한 지역의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전국 방방곡곡의 로컬 프로젝트, 브랜드, 공간 사례들이 소개돼 있긴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소개’에만 그친다는 점이죠.
“이런 프로젝트가 있어요, 저런 공간도 있었답니다” 하고는 쓱 넘어갑니다.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됐고, 누구의 아이디어였고,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그런 이야기의 맥락과 깊이는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사례들은 줄줄이 스쳐가는 슬라이드처럼 느껴집니다.
‘아, 이런 게 있구나’까진 알겠는데, ‘그래서 이게 왜 중요한 건데?’라는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로컬 축제에 대한 다룸입니다.
지역성과 커뮤니티, 주민 참여가 농축된 로컬 축제야말로 기획의 백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축제는 단 한두 줄의 언급으로 끝나버립니다.
마치 전국 일주를 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만 들른 기분이에요.
저자가 각 지역 축제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기획 과정을 취재해서 담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로컬 기획 바이블’이라 불릴 만한 책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로컬을 기획하라>는 단순히 이름만 훑고 넘어가는 수준이라, 로컬 기획의 온기와 맥락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로컬 기획’이라는 낯선 개념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유용한 나침반이 됩니다.
지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키워드로 접근하면 좋은지에 대한 감은 잡을 수 있죠.
딱 로컬 기획 초보자가 “이 길이 내 길인지” 알아보기 좋은 로드맵 같은 책입니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더 궁금해진 분들은, 다음 단계로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담긴 기록물, 혹은 기획자 인터뷰집 같은 책들을 찾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로컬을 기획하라>는 입구일 뿐, 로컬의 세계는 훨씬 넓고 깊으니까요.
비교가 실례일 수도 있지만, 비즈니스적인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사업체나 가게를 소개하는 시티호퍼스의 <퇴사준비생의 OO> 시리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리즈는 실제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 배경, 창업자의 고민, 공간에 담긴 철학까지 깊고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 뿐만아니라 그 지역의 특성과 문화까지 파고들어가는 깊이 있는 취재를 바탕으로 합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나도 이 가게 가보고 싶다", "이런 브랜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자연스럽게 자극하죠.
반면, <로컬을 기획하라>는 그런 디테일과 감정선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었지만 장소의 냄새도, 사람들의 표정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입니다.
그냥 딱 교과서를 읽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만약 노동형 작가님이 다음 책에서는 각 지역의 현장을 직접 누비며 기획자들과 찐하게 인터뷰하고, 축제 뒤편의 고군분투까지 담아낸다면 정말 멋진 ‘로컬 기획 실전편’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아울러 도시 재생과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최유진 교수의 <도시, 다시 살다>도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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