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영암은 못가봤지만, 영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월출산이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그만큼 월출산이 영암을 대표하는 브랜드이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월출산을 넘어서는 지역의 관광 상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말도 될 것 같습니다. (큰바위얼굴은 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네요)
이 책은 송일준 PD님께서 광주MBC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 영암으로 내려가 6개월 동안 이곳 저곳을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파헤친 결과물입니다.
'답사 0번지'라는 제목처럼 모든 남도 답사는 영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만큼 이야기도 많고 즐길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송일준 PD님은 이미 <제주도 한 달 살기>, <송일준의 나주 수첩>을 통해서 직접 현장을 누비며 기록하는 스타일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생생한 체험담이야말로 이 책의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남도 답사 0번지 영암>에서도 영암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아냈습니다.
지도 한 장 없이도 영암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예요.
| 역사 교과서에선 못 배운 이야기들
책에는 왕인박사, 도선국사, 최지몽, 홍랑 같은 이름이 나옵니다.
어렴풋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만, 막상 누군지 모를 때가 많지요.
작가는 그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우리에게 이야기책을 들려주듯 설명해줍니다.
학교에선 연도와 업적만 외우게 했는데, 여기선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냄새, 풍경, 감정까지 함께 따라옵니다.
역사 공부가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요?
특별히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왕인박사의 발자취를 살펴 볼 수 있었는데요, 조금 더 신경써서 문화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왕인박사의 흔적을 보러 일본에서 온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니 충분히 K-콘텐츠로서 활용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공간들
영암을 대표하는 음식은 갈낙탕과 어란이 있네요.
또한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던 참빗이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저도 어린 시절 참빗으로 이를 잡곤 했었죠.
어란은 만드는 이의 수고와 더불어 그 맛과 향이 일품인데요,
단순히 맛있다, 특별하다가 아니라 그 음식이 왜 생겼는지, 어떻게 전해져왔는지까지 알려주어서 그 맛이 참 궁금해졌습니다.
작가는 영암의 옛것만 쫓지 않습니다.
카페 화담, 월요 같은 요즘 핫플도 소개되는데요, 마치 전통과 현대가 영암이라는 큰 밥상에 반찬처럼 잘 어우러진 느낌입니다.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함께 담겨 있어, 영암이 단지 옛날이야기의 배경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느끼게 해줍니다.
<남도 답사 0번지 영암>은 글만 읽고 끝낼 책이 아닙니다.
당장 가방 싸서 영암으로 떠나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송일준 PD님의 문장은 따뜻하고 재밌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옛날이야기 들려주시듯 말이지요.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이 책은, 영암이라는 작은 지역이 품고 있는 크고 깊은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도 모르게 지도를 펴고 고향을 찾아보게 되네요.
내 고향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을까, 나도 한번 답사를 떠나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결국 이야기가 있고, 그런 이야기들을 얼마나 잘 버무리느냐에 따라 지역 콘텐츠가 결정 되는 것 같습니다.
여행보다 더 깊은, 사람 냄새나는 탐험을 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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